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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의 역사
  • 서기 317년
    서기 317년

    진원제(晉元帝) 사마예는 동진(東晉)을 세울 때 건강(建康, 오늘의 난징시)을 수도로 정하고 남문인 선양문(宣陽門, 오늘의 중화문)에 두 개의 궁궐을 지어 황권을 과시하려고 했다. 재상인 왕도(王導)는 나라가 세워진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진원제를 설득하기 위해 그를 선양문 밖으로 모셨다. 선양문을 나서니 우수산의 두 산봉우리가 한눈에 안겨왔다. 왕도는 기회를 놓칠세라 진원제에게 ‘저것이 하늘이 내려 주신 궁궐(天闕)이 아니겠습니까! 번거롭게 새로 짓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고 여쭈었다. 진원제는 그후로부터 궁궐을 짓을 생각을 거두었으며 우수산은 ‘천궐산(天闕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 서기 459년
    서기 459년

    남조 유송 (南朝劉宋)  대명(大明) 3년(서기 459년)에 건축된 유서사(幽栖寺)는 ‘남조 480개 사찰’ 중의 남조 초기의 유명한 사찰이다.

  • 서기 461년
    서기 461년

    남조의 유송 효무제 대명5년(서기 461년), 우수산 서쪽 봉우리 남쪽 산비탈의 동굴에 벽지(辟支)스님이 거처한 적이 있는데 이 동굴에서 ‘불이 되고 하늘에 올라가 신선이 되었다’고 하여 이 동굴은 벽지불동(辟支佛洞) 혹은 불굴동(佛窟洞)이라고 불리웠으며 이 때문에 우수산은 한때는 선굴산(仙窟山)이라고 불리우기도 했다.

  • 서기 503년
    서기 503년

    사공서도(司空徐度)가 양나라(梁) 천감(梁天監) 2년 초에 불굴사(오늘의 굉각사)를 건축했다. 불굴사는 우수산 남쪽에 위치해 있다

    당나라 시기에 우수산은 ‘서북의 청량산, 서남의 아미산과 함께 聖道의 명당’으로 불리웠는데 가장 유명한 3대 불교 명산의 하나이다.

  • 서기 643년
    서기 643년

    당나라 정관 17년(서기 643년)에 ‘동하(東夏)의 달마’라고 불리는 법융(法融)선사가 禪宗의 제4 조인 도신(四祖道神)의 가르침을 받아 유서사 북암의 모옥선실에서 우두선종(牛頭禪宗)을 창시했다. 우두선(牛頭禪)은 인도 선(印度禪)의 진정한 中國化의 시초이다. 우수산도 이때로 부터 중국 선종의 중요한 발상지의 하나로 되었다.

  • 서기 774년
    서기 774년

    당나라 대력(大歷) 9년에 건축한 굉각사탑(宏覺寺塔)은 민간에서 당탑(唐塔)이라고 불리운다. 당나라 대종(代宗)황제 이예(李豫)가 꿈에서 계시를 받고 ‘봉우리 위에 칠급부도를 쌓았다’고 한다.

  • 서기 943년
    서기 943년

    남당(南唐)의 황제 이변(李昪)과 황후 송씨(宋氏)가 묻힌 ‘흠릉(欽陵)’ 및 황제 이경(李璟)과 황후 종씨(鐘氏)가 묻힌 ‘순릉(順陵)’을 아울러 남당2릉이라고 부른다. 5대 10국 시대의 최대 규모 제왕 능묘이다. 우수산 남쪽 산자락에 위치해 있고 현재는 국가중점문물보호구역이다.

  • 서기 1050년
    서기 1050년

    북송(北宋) 황우(皇祐) 2년 초에 벽지탑(闢支塔)을 세워졌다. 우수산 서쪽 봉우리에 있었는 불굴사(佛窟寺) 자리에 세워졌고 벽지스님때문에 벽지탑이라고 불리우게 되었다.

  • 서기 1436∼1449년
    서기 1436∼1449년

    명나라 선덕(宣德) 8년 4월, 유명한 항해가 정화(鄭和)가 인도 서해안 캘리컷에서 운명했고 나중에 난징 우수산에 묻혔다.

    명나라 정통(正統) 시기에 불굴사는 홍각사(弘覺寺)로 이름이 바뀌었다. 홍각사는 금릉 제2의 사찰로 대보은사(大報恩寺)의 관할을 받았고 명나라 시기 난징의 8대 사절의 하나이다.

  • 서기 1636∼1948년
    서기 1636∼1948년

    청나라 때에 홍각사는 건륭제의 이름인 弘歷를 피하기 위해 굉각사라고 개명했다. 중화민국 시기에 굉각사는 보각사(普覺寺)라고 다시 개명했다.

  • 서기 1993년
    서기 1993년

    굉성(宏成)법사가 굉각사 재건을 결심했다. 원 유적지가 많이 파괴되었기에 조당산(祖堂山) 원 유서사(幽栖寺) 유적지 옆으로 자리를 정하고 굉각사 이름은 그대로 보존했다.

  • 서기 2008년 7월
    서기 2008년 7월

    석가모니의 두정골 사리가 담겨져 있는 철함(鐵函)가 난징시의 대보은사 유적지 장간사(長干寺) 지하궁전에서 출토되었다. 2010년 6월 12일 오전 9시 15분, 난징시의 서하사(栖霞寺)에서 ‘석가모니의 두정골 진골’이 다시 빛을 보았다.

  • 서기 2010년
    서기 2010년

    종교와 문화 행정주무부서 및 불교와 문화재 연구학계의 검토와 인가를 거친 후, 우수산 유적지공원 부지에 지하궁을 만들고 석가모니의 두정골 사리를 공양하기로 결정했다.

  • 서기 2011년 9월
    서기 2011년 9월

    난징시 강녕구 정부는 ‘지하궁전을 품은 천궐산, 오선(五禪)을 낳은 쌍탑——우수산의 절경’을 컨셉으로 하는 기획안을 제출하였다. 석가모니의 두정골 사리 공양 지점과 방식이 확정되었다.

  • 서기 2012년 9월 16일
    서기 2012년 9월 16일

    난징시 당위원회와 정부는 우수산에서 ‘난징 우수산 유적지 공원 정초식’을 가지고 건설프로젝트를 정식으로 가동하였다.

  • 서기 2015년 10월 27일
    서기 2015년 10월 27일

    석가모니 두정골 사리 공양 의식이 난징시 우수산에서 성황리에 열렸고 우수산문화관광구 개원식도 같은 시기에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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