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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의 치도(治道)문화

우수산은 천궐산이라 불리기도 한다. 천궐로도 천궐산이라는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진원제(晉元帝) 사마예는 동진(東晉)을 세울 때 건강(建康, 오늘의 난징시)을 수도로 정하였다. 동진 대흥(大興)년간에 진원제는 황궁 밖에 돌로 궁궐을 지어 황권을 과시하려고 했다. 재상인 왕도(王導)는 나라가 세워진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진원제를 설득하기 위해 진원제 출행길에 우수산을 바라보게 하였다. 우수산의 두 산봉우리를 가리키며 왕도는 기회를 놓칠세라 진원제에게 ‘저것이 하늘이 내려 주신 궁궐(天闕)이 아니겠습니까! 번거롭게 새로 짓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고 여쭈었다. 진원제는 왕도의 마음을 헤아려 그후로부터 궁궐을 짓을 생각을 거두었으며 우수산은 ‘천궐산(天闕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천궐’은 하늘이 내려 준것이고 인력으로 완성된 것은 아니다. 천인합일의 아름다움과 유가문화 중 인민애물(仁民愛物)의 ‘치도(治道)’정신이 더불어 지면서 후세사람들의 찬양을 받았다.



   중원문화가 침체되고 시국이 동요하던 5대10국 시기에 나라를 얻은 이변은 전쟁을 멈추고 백성을 안정시켜, 강회(江淮)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여 남당 경제문화의 번영과 발전을 촉진했다. 예술 면에서 남당 역시 번영 발전하여 문학, 미술, 서예, 음악 등 영역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두었다. 전란의 풍파에 시달리던 문인과 사대부들은 서둘러 안정과 부강의 남당으로 향했고 ‘유의서복(儒衣書服)은 남당에서 번창했고’ ‘문물은 원화(元和)의 풍격을 띄었다’. 다음 군주인 이욱(李煜) 또한 가사, 곡조와 음율 면에서 높은 성취를 이룩하였고,강남의 시흥문화도 크나 큰 발전을 가져왔다. 남당은 유가 사상으로 나라를 세웠고, 불교와 도교를 함께 발전시켰다. 세명의 황제는 부도(浮圖)를 사랑하고, 사상의 겸용을 허가했으며, 문화적 자유로하여 문인들은 재능을 남김없이 보여주며 소탈하게 살 수 있었다. 5대 10국의 전란속에서 남당은 중국의 심미문화와 인문정신을 보전 및 전승시켜 송나라의 문화 발전에 심원한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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