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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당2릉(南唐二陵)

우수산 남쪽 산기슭에 위치한 남당 2릉은 남당(南唐)의 선주 이변(李昪) 및 그의 부인 송씨(宋氏)의 ‘흠릉(欽陵)’과 중주(中主) 이경(李璟) 및 그의 부인 종씨(鐘氏)의 ‘순릉(順陵)’이며 5대 10국시기 최대 규모의 제왕무덤이다. 



흠릉은 규모가 큰 편이다. 무덤의 상단에는 원형의 작은 토돈(土墩)이 있고 길이는 약 21.5미터, 폭은 10.5미터이며 높이는 5.3미터이다. 무덤 앞의 길은 길이가 19미터이고, 묘실은 전실, 중실, 후실 세개의 주실(主室)과 10개의 측실(側室)로 나뉘어진다. 전실과 중실은 벽돌로 쌓았고, 후실은 돌로 축조됐으며 모두 합성목재 구조이다. 묘문과 묘실의 벽체에는 기둥, 각목, 두공을 사용했고, 그 위에는 채색무늬가 있다. 후실의 윗쪽에는 천상(天象)이 그려져 있고, 바닥을 깐 청석판에는 산과 강이 새겨져 있어 지리를 상징한다. 순릉은 전장이 21.9미터, 폭이 10.1미터, 높이가 5.4미터이고, 전실, 중실, 후실 세개의 주실과 8개의 측실로 나뉘어진다. 모두 벽돌구조이고, 건축형상은 흠릉과 대체적으로 비슷하지만 규모가 다소 작다.



중원문화가 침체되고 시국이 동요하던 시기에 나라를 얻은 이변은 전쟁을 멈추고 백성을 안정시켜, 강회(江淮)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여 남당 경제문화의 번영과 발전을 촉진했다. 예술 면에서 남당 역시 번영 발전하여 문학, 미술, 서예, 음악 등 영역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두었다. 전란의 풍파에 시달리던 문인과 사대부들은 서둘러 안정과 부강의 남당으로 향했고 ‘유의서복(儒衣書服)은 남당에서 번창했고’ ‘문물은 원화(元和)의 풍격을 띄었다’. 다음 군주인 이욱(李煜) 또한 가사, 곡조와 음율 면에서 높은 성취를 이룩하였고,강남의 시흥문화도 크나 큰 발전을 가져왔다. 



남당2릉에서 근 600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그 중에서 글자를 새긴 후 금으로 메워서 만든 옥 재질의 ‘애책(哀冊)’이 가장 귀중한 데, 봉건황제와 황후의 제문을 기록하고 있어 묘 주인의 신분을 판단하는 주요 근거로 되었다. 남당2릉의 발견은 5대 10국 시기의 상례와 장례 제도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실물 자료를 제공했다.



유의 사항: 해당 관광지는 우수산 문화관광구 1기 개발구역 밖에 위치하여 있다. 입장권은 별도 구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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