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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鄭和)문화원

정화문화원은 명나라 유명한 항해가인 정화의 무덤이다. 정화는 본명은 마화(馬和), 아명은 삼보(三保)로 운남성의 한 무슬린 가정에서 태여났다. 홍무(洪武) 14년, 명나라의 정벌대군 부통수 남옥을 따라서 난징에 왔다가 주체(朱棣)의 연왕부에 몸을 담게 되는 데, 주체를 따라 “정난지변(靖難之變)”에서 탁월한 전공을 세웠고 내궁감의 태감으로 승진했다. 명성조 주체는 마화에게 정(鄭)씨 성을 하사하여 정화라 불리게 되었다 영락(永樂) 3년 ~ 선덕(宣德) 8년, 정화는 7차례 대원정을 하게 된다. 정화는 연해의 국가들과 문화교류를 가지고 국교를 맺었으며 우의를 돈독히 하고, 해상 실크로드를 개척하여 역사적으로 위대한 쾌거를 올려 세계 최초 대륙간 항해가로 되었다.



동치(同治) 『상강양현(上江兩縣)』에는 ‘우수산에 태감 정화의 무덤이 있다. 영락(永樂)연간 서양으로 다녀오라는 명을 받았고, 선덕(宣德)초에 복명했다. 인도서해안 캐리컷에서 사망하고 우수산 산기슭에 묻혔다.’가 기재되어 있다. 정화는 세상을 떠난 후, 우수산에 묻혔다. 현지 주민들은 이 산을 ‘회회산(回回山)’이라고 부르고, 정화의 무덤을 “마회회묘(馬回回墓)”라고 불렀다. 묘혈의 원 모습은 장방형으로 남북 150미터, 동서 약 60미터이며 높이는 약 8미터였는 데 1985년에 회족과 무슬린 장례풍속을 보존하고 푸른 돌로 쌓은 말굽형 공원묘지로 새롭게 수선되었다. 무덤의 뚜껑 돌에는 아침 노을에 비낀 구름과 연꽃 무늬가 조각되어 있고, 아랍문자가 새겨져 있다. 무덤 뒷벽 상감 돌비석에는 예서체(隸書體)로 ‘정화지묘(鄭和之墓)’라 음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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